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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걷기/라오스 마을살이

라오스와 소수민족, 함께 살면서 알게된 진짜 라오스 몽족의 삶

 

 

 

 

안녕하세요. 디지털 노마드를 꿈꾸는 디노입니다.

저의 라오스 마을살이 이야기에 앞서, 라오스라는 나라와 그곳에 사는 소수민족에 대해 먼저 이해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께 제가 라오스 사람들과 함께 살면서 알게 된 라오스에 대해 들려드리겠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라오스

우리에게 '꽃보다 청춘' 방송을 통해 소개되어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는 여행지 중에 하나입니다.

촬영지였던 방비엥에 가면 시내 모든 가게와 식당마다 한국어가 적혀있어 이곳이 한국인지(흡사 북한처럼 보입니다.) 라오스인지 구분하기가 힘들 정도로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관광지의 모습과 대부분 농업에 종사하고 있는 실제 현지인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많이 다릅니다. 특히 소수민족들의 삶은 더 그렇습니다.

우리가 관광지에서 즐기는 비싼 식당, 카페, 클럽, 액티비티 등이 라오스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면 라오스의 정말 작은 단면만 보고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쌀국수를 관광지에서 15,000낍이나 주고 사 먹는 현지인은 없지요. 그 가격이면 그날 6식구 가족들이 다 함께 먹을 수 있는 생선을 살 수 있는 돈이니깐요.

 

 

 

 

 

 

라오스의 지리적 위치와 역사

라오스는 여러 나라(태국, 베트남, 캄보디아) 사이에 위치해 바다가 없는 나라이며, 공산주의(사회주의) 국가입니다. 라오 인민 민주공화국이라고 부를 수 있겠습니다. 
과거에 프랑스의 통치를 받았던 경험이 있지만 1949년 7월 19일에 독립을 하게 되지만 그 뒤로도 여러 전쟁을 겪었던 아픔이 있는 나라 이기도합니다.

 

저는 라오스 역사에 대해 더 깊이 알고 싶어서 씨엥쾅 폰사반에 위치한 항아리 평원(xieng khouang phonsavan plain of jars)에 갔다 왔었습니다.
씨엥쾅 폰사반은 1600년대 인도차이나 전쟁때 엄청난 피해를 입었고 그 때 생긴 폭탄 자국이 아직도 남아있는 곳입니다.

베트남 전쟁에 휘말리게 된 라오스는 지리적인 이유로 미군의 공중 폭격을 받았으며 미군은 약 200만 톤의 폭발물을 투하하였다고 합니다. 그중 UXO(불발탄)들이 아직도 남아있어서 씨엥쾅(2번째로 가장 많은 피해를 입은 주)에는 아직도 불발탄을 제거하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씨엥쾅 항아리평원
씨엥쾅 항아리평원

 

 

[항아리 평원(Plain of Jars)에서 몽 아저씨를 만나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씨엥쾅 항아리평원

 

 

라오스의 소수민족

라오스 인구는 약 720만 명 정도이지만 아주 다양한 소수민족들로 구성되어있습니다. 주민의 대부분은 라오룸족이지만 그 외에 약 50개 소수민족(실제로는 더 많다고 합니다.)이 거주하고 있습니다. 라오스는 험준한 산악지형으로 외부와의 교류나 접촉 없이 부족끼리만 살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요, 평생을 라오어를 구사하지 않고 자신의 민족 언어만을 사용하고 살다가 죽을 수 도 있다는 말입니다.

 

살아가는 지리적 위치에 따라 분류를 하기도 하는데, 우리가 보통 여행을 가면 만나는 사람들은 라오룸족이 대부분입니다. 제가 함께 살았던 몽족은 산악지대에 거주하는 민족으로(현재는 많이들 저지대로 내려와 살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음) 지배층인 라오룸과의 갈등이 존재합니다. 라오군과 몽족간의 전쟁이 있기도 했었죠. 저희 마을 사람들은 라오룸족 사람들이 마을에 들어오는 것을 항상 경계하였고 저에게도 "너를 납치해갈 수도 있는 위험한 사람들이니 조심하라"는 경고를 해주기도 하였습니다. 이것만 봐도 몽족이 라오룸 사람들에게 느끼는 감정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세 민족(라오룸, 크무, 몽)이 함께 여는 마을 잔치에 다녀왔었는데요, 각 민족마다 고유 전통복을 입고 전통 춤을 추는 모습이 신기하기도 했으며, 자신들의 전통과 문화를 잃지 않고 보존해온 모습 또한 감동적이었습니다. 비교적 다른 극소수의 민족들과는 다르게 어느 정도 인구수를 차지하는 크무족(약 11%)이나 몽족(약 8%)들은 스스로의 민족에 대한 자부심 또한 매우 큽니다.

 

 

라오룸
크무

 

 


몽족(Hmong People)

저는 그중 몽족과 함께 살았기에 몽족에 대해 더 알려드리겠습니다.

 

몽족은 디아스포라 민족입니다.

(디아스포라 : 특정 민족이 자의적이든지 타의적이든지 기존에 살던 땅을 떠나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현상)

홈스테이 가족, 친구들과 함께 대화를 하다가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적잖은 충격을 받았는데

"너는 나라가 있어서 부럽다."라는 말이었습니다.

몽족은 전쟁과 정치적인 이유로 여러 나라로 흩어졌습니다. (아래 표 참고)

그래서 가끔 미국에 있는 몽족 친척과 연락을 주고받는 경우를 종종 보기도 했습니다.

 

 

출처 : 위키피디아

 

 

 

 

우리 마을 이야기 (나몬느아)

우선 라오스는 21세기의 모습과 19세기(혹은 20세기 초)의 모습이 공존하는 나라입니다. 제가 지내던 곳은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저희 할머니 세대로 돌아간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우리 마을은 방비엥에서 차로 30~40분 떨어진 나몬느아라는 산골마을입니다. 대부분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고 마을 한가운데에는 홍깐이라는 마을회관이 존재하는데, 그곳에는 라오스 군인들이 상주하며 마을 사람들을 보호(라고 쓰고 감시라고 읽는..)하고 있습니다. 밤 늦게 돌아다니면 군인들에게 혼이납니다.
학교가 마을에서 멀리 떨어져 있기에 오토바이가 없는 집은 자전거를 타고 등하교를 해야 하는데, 점심시간에는 다시 집으로 돌아와야 해서 하루에 자전거만 2시간을 탑니다. 

 

홈스테이 이야기

홈스테이 가족들에 대해 이야기해드리면 몽족을 이해하기 더 쉬울 것 같아 저희 집의 속사정과 일과를 들려드릴게요.

우리 가족은 6남매였으며 아버지는 몇 년 전 돌아가셔서 어머니와 장녀 언니는 각자 멀리 돈을 벌러 떠나셨기에 5남매끼리 한 집에 살았습니다.

둘째 23살 '마니'라는 친구가 집에서 가장 역할을 하며 동생들을 돌봤습니다. 동생들이 학업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도록 마니는 중학교를 중퇴하고 가사를 전부 도맡아서 하고 있었기에 어깨가 참 무거웠을 겁니다. 새벽 4~5시에 일어나서 밥을 짓기 시작하는데요, sticky rice(찰밥)을 만들기 위해서 계속 지켜보면서 식히고 다시 불을 올리고 반복을 해야 하는 수고로움을 감수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 밥을 좋아하고 동생들이 원하기 때문에 마니는 새벽일찍부터 일어나 밥을 항상 짓습니다.

 

 

전통적인 밥솥
요리를 하는 마니

 

 

놀랄 수도 있겠지만, 아래 사진이 평소에 자주 먹던 밥상입니다. 쩨오라는 양념에 밥을 찍어서 먹으며, 농장에서 수확한 쟈오(시금치와 비슷한 채소)를 볶거나 삶거나 해서 먹습니다. 

아주 가끔 닭이나 쥐, 개구리 등을 먹으며 특별하거나 금전적 여유가 있는 날에는 딸락(시장)에서 생선을 사 오기도 합니다. 그래서 단백질 섭취하기가 조금 어려운 구조입니다.

 

 

라오스 몽족 밥상
전통 부엌

 

 

아침을 일찍부터 먹고 농장에 가는 것이 마니의 일상입니다. 마을 사람들은 계절에 따라 다루는 농작물이 다르지만 옥수수 농장, 쌀 농장, 바나나 농장 등을 갑니다. 농번기가 되면 모든 가족 인원이 농사에 가담해야 하는데 제대로 된 안전장비도 없이 일을 하기 때문에 다치는 일도 허다합니다. 제 동생도 발바닥이 다 까져서 피가 철철 나는데도 소독에 대한 개념이 없어 그냥 맨발로 다니던 모습에 안타까움을 느꼈습니다. 제가 일명 빨간약으로 소독을 해주며 다음부터 다치면 소독을 해라고 알려주었지만, 실실 웃기만 하는 순수한 내 동생을 보니 저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농사일을 가면 바쁜 날은 근처에서 싸온 밥과 음식을 먹고 잠시 쉬었다가 또 일을 합니다. 어찌나 능숙한지 그 자리에서 화로를 즉석에서 만들고 요리를 해서 바나나잎을 깔고 식사를 했어요.

아래 보이는 3번째 사진의 가방이 몽족 전통 가방입니다.

 

 

몽족(hmong) 전통 가방 

 

 

 

결혼

결혼 같은 경우는 아무래도 노동력이 중요한 사회다 보니 조혼이 일반적인데 시집가면 신랑 마을로 들어가 삽니다. 보통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결혼을 하는데 빠르면 10대 중반에도 결혼을 하기도 합니다. 제 친구 마니는 그 당시 23살이었는데 어른들은 어서 시집가야 하지 않냐며 재촉하는 분위기입니다.

 

 

 

 

 


지금은 라오스를 떠난 지 어느덧 4년이 흘러 제 친구들도 다 결혼하고 애까지 낳았다는 소식이 들려오네요.

제가 겪었던 일부분의 이야기를 해드렸는데요, 어느정도 라오스와 그 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민족들이 조금은 이해가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앞으로 함께 살았던 몽족 가족들과의 이야기를 들려드릴것입니다.

저의 라오스 마을살이 여행을 함께 하실 분은 다음 포스팅도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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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4/19 - [지구 걷기/라오스] - 라오스 한달살기가 아닌 5개월을 살다온 이야기의 시작